행복은 ‘나눠 먹는 주먹밥’
#. 보석처럼 빛나던 꽃불도 영원하지는 못했다. 꽃과 장작이 모두 타 버려 불이 꺼진 후 마을 사람들은 작은 병에다 재를 담았다. 이록은 그 병의 마개를 닫아 바다를 향해 던졌다. 슬픔이 부표가 되어 이 행성을 표류할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어디에 가도, 청색의 바다가 있는 한 죽은 자의 영혼을 기억할 수 있다. ---p.71
#. 행복은 함께 걷는 해안가 산책. 행복은 나눠 먹는 주먹밥. 행복은 나를 필요하다고 말해 주는 어떤 사람. 행복은 나처럼 애매하고 능력도 부족한 작은 아이. 행복은 내일도 나눠 받고 싶은 누군가의 서글픔. 참 별거 아니었다. 정말로 누구나 가질 수가 있구나. 어머니의 말이 옳았다. --- p.195
#. 어머니가 그랬지. 이 세상은 서로를 보완한다고. 건강한 사람 곁에 아픈 사람이. 밝은 사람 곁에 어두운 사람이. 굳센 사람 곁에 약한 사람이 있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 아니다. 대자연이 그들 모두 생존하길 원해서 곁에 두게끔 운명으로 정해 두었다. 그래서 세상은 하나로 연결되고 낙오된 자 없이 함께 가는 것. 비로소 끝없이 순환하는 것. --- p.246 청예 著 <일억 번째 여름>
이 소설은 멸망과 멸족에 관한 이야기다. 그리고 지극한 사랑에 관한 이야기다. 죽음이 삶으로, 삶이 다시 죽음으로 연결되며 순환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 끝까지, 그리고 일억 년 동안 계속되며 모든 것을 태워 버린 여름의 끝에서, 이제는 낡은 말이 되어 버린 ‘사랑’에 노랗고 붉은 색을 더한다.
“우리에게는 반드시 살리고 싶은 사람이 있다.” 그렇다. 이것은 멸망을 넘어서는 사랑 이야기다. 소설 속 인물들은 끊임없이 자신의 '쓸모'를 묻는다. 자신의 존재 가치를 자문하던 이들은 끝내 서로를 구원하는 데서 그 이유를 찾는다.
잔혹할 정도로 뜨거운 여름 속에서도 자신의 등을 내어 주고, 상대를 살리기 위해 목숨까지 바치는 애틋한 서사는 “그래서 세상은 하나로 연결되고 낙오된 자 없이 함께 가는 것. 비로소 끝없이 순환하는 것.”임을 보여 준다.
비록 세계가 멸망하더라도 너를 지키기 위해 온 삶을 내던지겠다는 절절한 외침은 지금껏 본 적 없는 강렬한 사랑의 모습이다.
“어떤 산은 붉어지고, 어떤 산은 노래지고, 또 어떤 산은 갈색으로 뒤덮이는, 본 적 없는 세계. 초록 나뭇잎이 빨개지는 마법. 행성이 스스로 움직이고, 랑데부와 함께 걷는 일을 시작하면 다시 펼쳐진다던. 먼저 떠난 이들이 늘 궁금해 했던 환상. 누군가는 그것을 계절이라고 했다.” (252면)
작가의 말처럼 “서로 다른 우리가 차이를 이해하고 공존하기에 오늘도 우주에는 별이 반짝인다. 누군가를 밝혀 주고 또 빛을 받으며 우리는 쓰임새를 완성한다.” 그러니 당신도 세상을 이루는 별이자 빛임을!
[황보 승남 hbs5484@hanmail.net 이미지=Microsoft Bing, DALL·E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