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金 世現 소장은…
▶…또 다시 겨울이다. 계절의 변화와 함께 찾아 온 경제 한파 또한 매섭게 불어와 따뜻한 위로가 어느 때 보다 절실한 상황이다. KTX로 광주에 내려가는 길은 그리 멀지 않게 느껴졌다. 기차 안에서 도시락으로 점심을 때우고 얼마 가지 않으니 광주다. 남쪽이라서 그런지 서울 보다는 훨씬 따뜻했다. 좋은 징조다.
▶…꽤 긴 사무실을 지나 한 쪽 모서리에 위치한 소장 실에서 만난 김 세현 소장의 첫 인상은 참으로 선하구나 하는 생각이었다. 자리를 함께한 오 소화선생은 기자에게 목소리를 크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별로” “에이” “자랑할 거 없는데”라는 말로 차분하게 보건소의 사업을 소개하는 말 들 속에는 ‘그저 오셨으니 차나 한잔 하고 가시지요' 라는 진솔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김 소장이 전하는 어눌한 설명을 잘 알아듣지 못해 애 써는 기자가 오히려 민망했다. 미리 부탁한 자료의 내용도 너무 담담하여 걱정이 될 정도였다. 전국 최초이거나 가장 잘한다는 미사여구에 길들여 진 기자의 입장에서는 ‘취재거리'가 문제였기 때문이다. 애써 내세우기 보다는 있는 그대로 보여 주겠다는 솔직함이 오랜만에 마음을 편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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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쓰기 싫은 표현이지만 김 소장은 ‘전국 최초 장애인 소장'이다. 1982년 광주 북구보건소의 관리의사로 부임하여 2003년 보건소장에 임명되어 환자진료를 시작하면서 같이 근무해왔다는 오 소화 선생이 “불편한 몸인데도 불구하고 내 가족처럼 어려운 환자들을 돌봐 주었다” 면서 “환자를 위해 혼신의 힘을 다 해 왔다”라는 존경심이 결코 과장되지 않게 받아들여지는 것도 凡人들이 감히 감당할 수 없는 김 소장의 지극한 사랑 때문임을 쉽게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문학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제 처지를 누구 보다 깊게 인식하고 있으셨던 어머님이 의과대학에 갈 것을 권유하여 진로를 바꾸었죠. 의대 졸업 후 보건소에 첫 발을 내딛을 때는 한 1년 근무하고 도망가려고 했었는데….” 그러나 환자를 보면서 상황은 크게 바뀌었다. 그 당시만 해도 보건소를 찾는 일반 주민들의 의료 서비스 혜택이 미약한 시절이라 너무나 고마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주저 앉게 되었다. “정말 잘한 선택”이었다고 했다.
보건소에 찾아오는 환자들은 대부분 병의원에 갈 수 없는 형편이어서 “상대적으로 푸대접을 받고 있는 것이 안타까웠고, 우리 어머님도 저런 대우를 받을 것인데 하는 생각에 조금만 더 있자”라고 한 것이 지금에 이르고 있다는 것.
오 소화 선생은 노인 분들이 찾아오면 어김없이 일어나 인사하고, 보건소에서 케어할 수 없는 환자들은 일일이 시내 개원 가에 직접 연락해 환자관리를 부탁했다면서 “건강한 사람도 하기 힘든 일인데 정신력으로 견뎌 오신 것 같다”고 했다. 그래서 보건소 내에서는‘의지의 한국인'이라고 부른다고 했다. 조금은 진부한 표현이겠지만 그 밖에 딱히 김 소장을 나타내는데 적당한 말도 없을 것 같았다.
▶…김 소장은 소장으로서의 역할과 관련해서는 지나칠 정도로 겸손해 하면서도 청년시절 하고 싶어 했던 문학과 연관된 얘기를 나누자 금방 눈빛이 달라졌다. A.J 크로닌의 ‘성채'에서부터 차 동엽 신부의 ‘무지개 원리', 정 채봉 시인의 성인동화전집, 브라이언 트레이시의 ‘백만 불짜리 습관'에 이르기 까지 그침이 없다. 이 책들이 우리에게 던져주는 메세지는 무엇일까. 그것은 김 소장의 생활철학이라고 할 수 있는 희망과 용기로 집약된다. “시련은 극복할 만큼 주어진다.”는 신념이다.
김 소장은 정 채봉시인의 전집을 직원들이 읽어 보기를 권했다며 “마음을 움직이고 믿음을 주는 이야기”라고 했다. “그래 믿고 간절히 바라면 기적도 일어날 수 있다”는 믿음이 생활인 김 세현을 지탱해 온 뿌리이리라.
▶…김 소장은 만나 얘기하는 얼마 안되는 순간 불현듯 법정스님을 떠올렸다. 법정스님은 얼마 전 모 일간 신문의 인터뷰에서 “지난 겨울 크게 앓고 나니 철들었다”면서 “차 마시고, 책 읽는 것이 모두 고마운 일, 행복도 불행도 모두 순간일 뿐…인생 도 지나가면 돈이 아니라 德 만 남는다.”고 했다.
2004년 수상한 대통령 포상금 전액을 장애인 단체에 기부하는 한편 장학금은 물론 각종 사회단체에 수시로 기부금을 기탁하는 등 어려운 이웃에 대한 봉사를 생활화하고 있는 김 소장과 그를 돕고 있는 직원들의 정성은 곧 ‘德'이다.
▶…김 소장은 퇴직 후 순회 의료봉사활동을 할 계획이라고 했다. “질병의 90% 이상이 마음에서 온다.”, “환자 분들의 마음부터 감싸 안아라”는 김 소장의 말을 들으면서 이미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던 행로다.
▶…목소리와 눈빛이 참으로 정겹다. 잘 다듬어진 억양보다 훨씬 정열적인 음색이다. 얼굴에 흐르는 온화한 미소는 만나서 대화를 나누는 모든 사람의 마음을 따뜻하게 바꾸었다. 푸근하고, 넉넉한 그의 웃음이 마주하는 이의 아픈 마음과 몸도 편안하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명의의 큰 德目일 것이다. 그의 넉넉함은 그가 속한 조직과 모든 구성원들을 풍요롭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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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보 승남국장/hbs5484@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