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계에서는 이 방헌 회장을 ‘의리 맨’이라고 부른다. 활동분야도 넓고 다방면에서 열성적인 참여를 아끼지 않기 때문이다. 한양대학교병원 백남심장센터소장과 한국만성질환관리협회 회장, 대한순환기학회 이사, 대한심초음파학회 회장, 대한고혈압학회 이사장을 역임하는 등 단체 및 학회 활동에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해오고 있다.
2008년 2월부터는 오랫동안 관여해 왔던 한국 만성질환관리협회장을 맡아 창립 30주년 행사와 30년사 발간 사업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는 등 국내 만성질환의 관리 사업에도 큰 족적을 남겼다. 그가 관련 학회 및 학술행사에 남다른 열정을 보이는 것은 최신의학기술과 학술정보를 획득해 날로 다양해져 가는 환자 진료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사명감과 더불어 대학교수로써 후학양성에 대한 남다른 책임감 때문이다.
특히 국내 고혈압 예방 및 관리의 중요성을 새롭게 부각시켜 전 국민적인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는 점에서 관련 학계의 높은 평가를 받은바 있다. 지난 2001년도에 대한고혈압학회 이사장직을 맡으면서 대국민 홍보를 위해 매년 12월 첫째 주를 고혈압주간으로 선정해 국민들에게 고혈압의 중요성을 인식시키고 예방과 적절한 치료를 위한 7가지 생활수칙을 만들어 건강증진을 위한 발판을 마련했던 것이다. 이 회장은 지난해 말 정년퇴임이후 송도병원 성인병센터 원장을 맡아 또 다른 환자와의 만남을 설계하고 있다.
▶의사의 길에 들어서다
전남의대를 졸업(1969년)하고 한양대학병원 설립 다음 해에 내과 전공의 수련을 시작, 1980년에 의과대학에 부임했다. “인공신장기의 필터를 깔다가 나사를 너무 조여 판이 딱하고 부러졌을 때 얼마나 당황했는지 모른다. 땜질하러 기계를 어깨에 메고 청계천을 헤집고 다녔지만 알루미늄으로 되어 어디서고 붙일 수 없다고 할 때는 정말 난감했다. 겨우 성동구 자동차 수리소에서 쇠를 잘라 붙이고, 나오니 한 밤중에도 땀이 등을 타고 내려왔다.” 이 회장은 이러한 어려움을 겪으면서 병원 설립 초기부터 김 종설, 손 의석, 이 정균교수 등과 더불어 한양의대 심장내과 확립에 기여 했다.
▶한양의대 내과 기틀 다져
1982년 일본동경여자의대 심장혈관센터에서의 연수와 1984년 미국에서 1년 간 본격적인 심초음파 연수를 마치고 귀국해 심초음파와 핵의학 검사를 주로 다루었다. 1993년에 심장내과 과장과 백남심장센터 소장을 역임하면서 한양의대 심초음파 연수강좌를 시행하였으며, 2003년부터 내과학교실 주임교수를 맡아 한양의대 내과의 기틀을 다졌다.
1996년부터 4년 간 의과대학 부학장으로 봉직하면서 옴니버스 형식의 「생활 속의 의학강좌」를 직접 개설하여 현재도 가장 인기 있는 강좌로 자리 매김하고 있다. 학창시절부터 팔방미인이라는 별명을 들을 정도로 다방면에서 조예가 깊었던 이 회장은 부드럽고 쉽게, 그러면서도 예리하고 정확하게 강의를 진행하여 「송곳」이라는 애칭을 갖고 있다.
'7가지 생활수칙' 제정, 인식제고 시켜
한국만성질환관리협회장 등 열성적 참여
▶고혈압학회 등 학회 활동
1980년대 후반부터 국내 심초음파학회 설립에 기여했으며, 2000년에는 대한고혈압학회의 발기를 주도하면서 오늘날 두 학회의 발전에 큰 족적을 남겼다. 2001년에는 12월 첫째 주를 「고혈압 주간」으로 정해 전국적으로 대국민 공개강좌와 계몽행사를 실시했고, 건강과 행복을 골자로 하는 7가지 수칙을 알기 쉽게 제정했다. 또 개원의 연수강좌를 개설, 전국을 순회하면서 수준 높은 강의를 실시하여 행동하는 의사 상을 심어 주었다.
특히 2005년 대한고혈압학회 이사장과 아시아-태평양 고혈압학회 회장을 역임하면서 특유의 리더십으로 제4차 아시아-태평양고혈압학회를 성공리에 마쳐 한국 고혈압학회의 위상을 국제적으로 제고시켰다. 한국만성질환관리협회의 경우 30여년에 가깝게 협회 활동에 참여하면서 명 강의로 전국적인 인기가 높았다. 2008년부터 현재까지 회장에 재직하면서 「한국만성질환관리협회 30년사」를 발간하는 등 협회 발전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저술 활동
“학생들의 마음속에 오래 기억될 명 강의를 남기지 못한 아쉬움이 남는다.”는 이 회장의 말과는 달리 명 강의를 그대로 옮겨 놓은 명저를 다수 발간하여 인기를 끌었다. 1988년 체육대학 교수들과 함께 「운동 생리학」을 공저했고, 교양강좌의 교과서로 의대 교수들의 강의록을 모아 「생활 속의 의학」을 출판했다. 2002년에는 스승인 김 종설교수와 함께 「고혈압의 이해와 치료」를 발간했고, 2004년 일반 의사들을 위한 「고혈압 진료 매뉴얼」, 2005년 「고혈압 홈 케어」 등 활발한 저술활동을 통해 국민건강의 또 다른 영역을 담당하기도 했다. 이러한 업적과 진료 분양의 명성으로 2004년에는 심장질환 분야 「대한민국 베스트 닥터」(동아일보, 이성주)에 선정됐다.
▶문학과 스포츠
의예과 시절부터 대학신문에 실린 산문과 6년 간의 영광과 고뇌를 적어 놓은 일기장 「빛 속에 그늘 속에」를 아직도 간직하고 있을 만큼 문학에 대한 열정이 남다르다. “수련의 시절에도 의사신문에 「진료실 산책」을 연재하는 등 나에게서 의학과 문학은 뗄 수 없는 인연이 있는 모양입니다.” 2003년 의사 수필가 모임으로는 정평이 나있던 「수석회」에 가입한 것을 계기로 본격적인 수필문학 활동을 펼치게 됐다.
“한글사전과 맞춤법사전을 옆에 끼고, 틈만 나면 책을 읽고 밤이면 벌떡 일어나 생각난 것을 메모하곤 했습니다.” 2005년 에세이 문학을 통해 「헌 구두」라는 작품으로 초회 추천을 받는 한편 제1회 보령 의사수필 문학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2006년에 「해우소에서」라는 수필을 발표했다.
이 작품으로 수필가로 등단했고 한국문인협회 회원이 되었다. “진료와 수필, 그들의 공통점은 사랑이라는 것. 몸이 아픈 사람의 고통을 없애 주는 것은 사랑이고, 마음이 울적한 사람의 고통을 함께 나누는 것도 사랑이라고. 수필 속에 사랑을 담으면 되는 것이라고. 그래서 의학 서적을 뒷전으로 재처 두고도 미련 없이 긴 눈길 주지 않았던 짧고도 긴 시간이었다.” 2007년 첫 수필집 「게와 물고기」로 2008년 한국현대수필문학상을 수상했다.
의사로서는 드물게 한국수필문학진흥회 부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한국의사수필가협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 이 회장은 “정년을 하면서 새로운 수필세계로 들어가면서 어쩜 이제 본격적인 문학수업을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진료와 문학 외에 또 하나 빠뜨릴 수 없는 것이 골프다. 전국 교수 테니스대회에 한양대학 대표선수로 출전할 정도로 테니스에 열중하다가 골프 마니아가 됐다. 의사 사회에서는 알아주는 골퍼로 이글을 7-8회나 했다. 베스트 스코어는 1994년 아시아나 서코스에서 세운 70타. 2008년 11원에는 우정힐스 4번 홀에서 홀인원을 경험하기도 했다.
▶정년과 새로운 인생설계
이 원장의 아호는 中和다. 고신의대 내과 이 재우 교수는 “구두로 치면 반짝이고 멋있어 보이지만 발이 조이는 새 구두가 아니라, 오래 신어 닳았지만 발에 딱 맞고 편한 中古 구두처럼 친근감이 느껴지는 분으로, 세월이 흘러도 그 溫和함이 항상 남아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중간에서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중용의 도로 모든 일을 조화롭게 이끌어 내는 이 원장의 성품을 정확하게 표현한 셈이다. 이 원장은 이제 부타 시작이라는 말을 자주 언급했다. 진료도 그렇고, 문학도 그렇고, 운동도 나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남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마음이다. “나를 가르치고, 나의 가르침을 받아 준 모든 이들과 나의 치료를 받아 온 모든 분들께 감사를 드리고 싶다.”
황보 승남국장/hbs5484@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