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소라 소장은…
#1 이화의대를 졸업하고 진단검사의학을 전공한 이 소라는 전공과목이 자신의 성격에 맞는다고 생각했다. 인체로부터 채취되는 검체에서 분자 및 세포성분을 검사함으로써 질병의 선별 및 조기 발견, 진단 및 경과 관찰, 치료 및 예후 판정에 기여할 수 있다는 학문 자체의 매력, 특히 사람들과 부대끼지 않고 혼자서 검체를 다루는 작업에 나름의 즐거움도 있었다.
개원하지 않겠다는 다짐대로 종합병원에 취업했고, 2년여 동안 재직했다. 그런 중에 1년 가까이를 육아 휴직으로 보내면서 사람들과 더불어 사는 모습, 검사실 안에서 나 홀로 하는 작업 보다 훨씬 더 많은 보람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새로운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평소 자신의 삶이나 직업적인 성취도 중요하지만 “교육 받은 여성으로써의 사회적인 역할”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졌던 이 소라가 보건소라는 곳에 소위 필이 꽂히게 된 계기다.
#2 1999년 연제구보건소 관리의사로 출발한 이 소라소장은 2005년부터 금정구보건소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그 동안 모자보건 선도보건소 사업은 물론 맞춤형 방문보건사업, 심뇌혈관 질환 및 아토피 천식 예방관리사업 등에서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 맞춤형 방문 보건사업은 2007년 시작 첫해에 전국 1위를 차지하는 영예를 얻기도 했다.
오래 전부터 이 소장이 적극적인 관심을 갖고 추진하고 있는 사업이 보건소 중심의 호스피스 사업이다. 2009년 전국 처음으로 부산진구와 금정구보건소에 호스피스 시범사업단이 선정된 것을 계기로 가정에서 치료 중인 암 환자에 대한 서비스를 확대하고, 2년마다 지역 암 통계 자료집을 발행하는 등 암 환자 관리를 강화하고 있는 것이다. 전체 보건소 사업의 한 분야이지만 “너무 소중한 사업”이라는 설명이다.
말기환자가 겪게 되는 뼈를 깎는 육체적 고통, 가족과 떨어져 있어야 하는 정신적 슬픔, 죽음에 대한 두려움. “호스피스는 병의 완치가 아니라 환자의 돌봄(care)이 목표이기에, 죽음을 눈앞에 둔 환자와 환자 가족의 정신적·육체적 고통을 최소화하고, 마지막 생을 편안하게 맞도록 돕는 역할입니다.”
- 호스피스 사업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이 아직은 부족하다고 본다.
“죽음 준비에 대한 새로운 가치관이 확립되어야 할 것입니다. 죽음 준비는 삶을 이치에 맞게 살아보기 위해 임박해 있는 죽음을 생각해보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죽음 준비는 죽을 준비가 아니라 바로 삶의 준비를 의미하며, 이런 의미에서 죽음 준비 교육은 이 땅에서 제대로 살도록 하기 위한 삶의 교육이라는 관점입니다.”
- 어떻게 운영되고 있나?
“부산가톨릭대학교와 부산지역 암 센터, 그리고 메리놀병원, 부산의료원, 성모병원 등과 연계하여 재가 암 환자 호스피스사업을 효율적으로 전개하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죽음을 위한 세미나'를 개최하여 호스피스사업과 죽음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제고하는 한편 자원봉사자 양성 교육을 확대하여 저변을 넓혀 나가는데도 노력하고 있습니다.”
죽음을 편안히 맞이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살아야 될지 심사숙고할 필요가 있다. 죽음을 편안히 맞이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은, 바로 지금 우리가 삶을 영위하는 방식이라고 달라이라마도 말했다. 삶을 이치에 맞게 살지 않고서 죽음을 편안히 맞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올바르게 사는 법을 익혀야 죽음을 평온하게 맞을 수 있다는 것이 이 소장의 지론이다.
주민들과 직원들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근무하면서 사업의 성과를 더불어 나누는 기쁨, 무뎌지려는 일상의 사소한 것 까지도 고마워하고, 서로 격려하는 정성들이 너무 아름답습니다.
#3 82세의 김씨 할머니는 3년 전 걸린 중풍으로 걷지를 못한다. 정기적으로 보건소에서 찾아오는 방문간호사와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을 받고 있으나 그 때만 잠시 기력을 회복할 뿐 도통 움직이지를 못한다. 정신까지 가물가물해 수돗물을 틀어놓고 잠그지 않거나 밥상을 차려 놓고도 부엌에 다시 들어가는 일이 다반사다. 누구하고 오순도순 얘기라도 나누면 좋으련만, 사정이 여의치 않다.
2007년 가을 이던가. 방문보건사업의 일환으로 혼자 사시는 82세의 김씨 할머니 댁을 담당자와 함께 방문했다. 그저 손을 잡고 어떻게 사시느냐고 물었을 뿐인데 “더럽다고 자식도 손을 안 잡아 주는데”라며 얼마나 반가워하시는지. 가슴이 찡했다. 내 부모한테 나는 얼마나 다정했던가. 베푼다는 생각보다 많이 배운다는 것을 매일 새롭게 마음으로 새긴다.
“매일 같이 만나는 주민들이나 직원들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근무하면서 사업의 성과를 직원들과 더불어 나누는 기쁨, 무뎌지려는 일상의 사소한 것 까지도 고마워하고 서로 격려하는 정성들이 아름답고, 개인적으로는 최근 야간에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현장의 경험과 이론을 접목해 나가는 즐거움도 가질 수 있어 보람을 느낍니다.”
#4 이 소장은 인터뷰 중간 중간에 미래라는 말과 인연이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했다. 일정한 톤으로 얘기하는 말들은 그대로 문장이 되고, 교정이 필요 없을 만큼 깔끔했다. “살갑지도 않고, 다정하지도 않지만 한번 맺은 인연은 소중하게 생각한다.”면서 “살면서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잘 해야 한다.”는 것이 신념이다.
찬찬히 얘기를 듣다 보면, 문득 다름 아닌 ‘꿈의 제작기'라는 걸 절감하게 된다. 미래는 인연으로 맺어진 꿈이 아닐까. 호스피스 사업에 대한 열정이나 장기기증사업을 위한 준비, 그리고 구강 보건사업의 필요성 등. 그 꿈은 작지만 알차다. 그 꿈에도 전염성이 있기에 가족 같은 직원들은 서로 존중하고, 화합한다. 그것은 그들의 얘기를 듣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조직구성원들의 생각을 듣는다는 것은 조직 구성원들로 하여금 변화를 불러 오는 작업에 동참했다는 생각을 하게 하여 의견을 일치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듣는 사람이 없으면 커뮤니케이션이 일어나지 않는다.
차분하지만 열정적인 사고, 감정의 드러냄을 억제한 간결하고 투명한 목소리, 이를 성실히 수행하는 직원들의 정성어린 따뜻함. 이들이 이뤄내는 하모니는 그래서 마음을 공명하게 만든다.
황보 승남국장/hbs548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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