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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으로 읽는 마음 한 줄

지구 생명에서 배우는 생존 지혜

by 텅빈충만, 상선약수 2026. 9. 22.

#. 미국 오리건 대학교 연구진에 따르면, 늙은 일개미는 젊은 일개미에 비해 나뭇잎을 써는 데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쓴다. 평생 잎을 써느라 톱날이 무뎌진 것이다. 그렇다고 늙은 일개미들이 바로 퇴물 취급을 당하는 건 아니다. 그들은 힘 좋은 젊은이들이 썰어 놓은 나뭇잎을 운반하는 비교적 쉬운 역할을 맡는다. 사회가 자기 구성원들에게 적합한 일을 찾아 맡긴다면, 불필요한 존재는 사라진다. 초고령 시대를 맞아 출산율을 높이는 정책도 세워야겠지만, 부양 인구라며 제쳐 두었던 고령층에 어떤 역할을 맡길지 고민해 볼 시점이다. --2장 문제적 동물 중에서.

최재천 <히토리아 비테이, 지구 생명들에게 배우는 인류의 생존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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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집 근처에 쪼그리고 앉아 한참을 들여다본 적이 있습니다. 우리 눈에는 그저 검은 점처럼 보이는 개미들이 쉼 없이 무언가를 나르고 있었습니다. 누군가는 잎을 잘라 내고, 누군가는 그것을 옮기고, 또 누군가는 집 안으로 들여보냈습니다. 가까이서 바라보면 그 작은 몸집 안에도 분주한 질서가 숨어 있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합니다.

사람들은 흔히 개미 사회를 부지런함의 상징으로 기억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진짜 지혜는 부지런함 자체보다 역할을 나누는 방식에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늙은 일개미는 젊은 일개미보다 나뭇잎을 자르는 데 훨씬 많은 시간과 힘을 들인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늙은 개미가 무리에서 밀려나는 것은 아닙니다. 젊은 개미들이 잘라 놓은 잎을 운반하는 일을 맡으며 여전히 공동체의 한 구성원으로 살아갑니다.

문 득 숲길에서 본 늙은 나무들이 떠오릅니다. 더 이상 어린 나무처럼 빠르게 자라지는 못하지만, 그늘을 만들고 바람을 막아 주며 숲의 시간을 붙들어 둡니다. 늙음은 능력의 소멸이라기보다 역할의 변화에 가깝습니다. 자연은 오래전부터 그 사실을 알고 있었던 셈입니다.

하지만 인간 사회는 어떨까요. 우리는 오랫동안 생산성과 속도를 기준으로 사람의 가치를 재단해 왔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나이가 든 이들은 부양해야 할 인구라는 숫자로 불리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공동체의 짐처럼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개미 사회를 들여다보면 다른 질문이 떠오릅니다. 그들이 필요한 존재가 아닌 것이 아니라, 우리가 아직 적절한 역할을 찾지 못한 것은 아닐까 하는 질문입니다.

초고령 사회를 이야기할 때 우리는 출산율과 복지비용을 먼저 떠올립니다. 물론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러나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오랜 경험과 시간을 품은 이들에게 어떤 자리를 마련할 것인가 하는 고민일지도 모릅니다.

숲이 늙은 나무를 버리지 않듯, 개미집이 늙은 일개미를 내치지 않듯, 사회 역시 구성원 각자가 빛날 수 있는 몫을 찾아 줄 때 더 건강해질 수 있습니다. 어쩌면 불필요한 존재란 처음부터 없었는지도 모릅니다. 다만 아직 발견되지 않은 역할이 있을 뿐입니다.

[황보 승남 hbs5484@hanmail.net 이미지=chatgp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