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으로 읽는 마음 한 줄

“너만의 이야기로 존재하길”

텅빈충만, 상선약수 2022. 3. 24. 09:18

 

  #. “영화가 끝나고 ‘the end’ 마크가 찍힐 때마다 나는 생각했네. 나라면 저기에 꽃봉오리를 놓을 텐데. 그러면 끝이 난 줄 알았던 그 자리에 누군가 와서 언제든 다시 이야기가 시작될 수 있을 텐데. 그때의 라스트 인터뷰가 끝이 아니고, 다시 지금의 라스트 인터뷰로 이어지듯이. 인생이 그래.” _47

#. “한밤에 까마귀는 있고, 한밤의 까마귀는 울지만, 우리는 까마귀를 볼 수도 없고 그 울음소리를 듣지도 못해. 그러나 우리가 느끼지 못할 뿐, 분명히 한밤의 까마귀는 존재한다네. 그게 운명이야. 탄생, 만남, 이별, 죽음…… 이런 것들, 만약 우리가 귀 기울여서 한밤의 까마귀 소리를 듣는다면, 그 순간 우리의 운명을 느끼는 거라네.” _86

#. 정작 나는 선생님과 나의 대화가 어떻게 흘러갈지 알 수 없었다. 선생님도 우리의 대화가 어떻게 정리될지 전혀 예측할 수 없었다. 생각하는 자로서 그는 항상 용기백배했고, 듣고 정리하는 자로서 나는 가끔 허둥거렸다. 어떤 피드백도 없는 상황에서, 나는 매주 화요일 그가 가장 귀한 것을 줄 거라 믿었고, 그는 내가 가장 촉촉한이어령을 써낼 것이라 믿었다. _241

 

() 이어령 초대 문화부 장관의 영결식이 10일 오전 서울 서초구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엄수됐다. 마침 지난달에 읽었던 김지수의 라스트 인터뷰삶과 죽음에 대한 마지막 인생 수업,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을 다시 꺼내 들었다.

 

이어령은 우리에게 자신의 죽음이 끝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한다. “내 육체가 사라져도 내 말과 생각이 남아있으니 그만큼 더 오래 사는 셈이라고…….

 

글을 쓰고 말하는 것이 자신의 마지막 희망이라는 그는 보통 사람은 죽음이 끝이지만작가에게는 죽음에 대해 쓰는다음이 있다며, 현재 자신에게 벌어진 모든 일을 아주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있음을 털어놓는다.

 

죽음이 무엇인지 알려주기 위해” “생사를 건네주는 사람이라고 한다. “자기만의 무늬를 찾아 헤매는 이들을 위해 자신의 마지막 지혜 부스러기까지 이 책에 담는다. 제자들이 길을 헤맬지라도 너만의 이야기로 존재하길 바라는 이런 스승과 함께라면 어쩌면 우리는 이 불가해한 생을 좀 덜 외롭게 건널 수 있지 않을까.”

 

[황보 승남 hbs5484@hanmail.net 사진 pixaba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