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으로 읽는 마음 한 줄

‘삶 속의 죽음’, ‘죽음 곁의 삶’

텅빈충만, 상선약수 2022. 2. 25. 10:10

#. “우리는 영원히 타인을 모르는 거야. 안다고 착각할 뿐. 내가 어머니를 아무리 사랑해도 어머니와 나 사이에는 엷은 막이 있어. 절대로 어머니는 내가 될 수 없고 나는 어머니가 될 수 없어. 목숨보다 더 사랑해도 어머니와 나의 고통은 별개라네. 존재와 존재 사이에 쳐진 엷은 막 때문에. 그런데 우리는 마치 그렇지 않은 것처럼 위선을 떨지. ‘내가 너일 수 있는 것처럼.” _120

 

#. “죽기 직전, 눈앞에는 인생이 파노라마 필름처럼 펼쳐진다는 얘기를 들었는데요.” “아닐세. 인생은 파노라마가 아니야. 한 커트의 프레임이야. 한 커트 한 커트 소중한 장면을 연결해보니 파노라마처럼 보이는 거지. 한 커트의 프레임에서 관찰이 이뤄지고, 관계가 이뤄져. 찍지 못한 것, 버렸던 것들이 나중에 다시 연결돼서 돌아오기도 해.” _155~156

 

#. “바다에 일어나는 파도를 보게. 파도는 아무리 높게 일어나도 항상 수평으로 돌아가지. 아무리 거세도 바다에는 수평이라는 게 있어. 항상 움직이기에 바다는 한 번도 그 수평이라는 걸 가져본 적이 없다네. 하지만 파도는 돌아가야 할 수면이 분명 존재해. 나의 죽음도 같은 거야. 끝없이 움직이는 파도였으나, 모두가 평등한 수평으로 돌아간다네. 본 적은 없으나 내 안에 분명히 있어. 내가 돌아갈 곳이니까.” _291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은 이 시대의 대표지성 이어령이 마지막으로 들려주는 삶과 죽음에 대한 지혜로운 이야기가 담긴 책이다. 오랜 암 투병으로 죽음을 옆에 둔 스승은 사랑, 용서, 종교, 과학 등 다양한 주제를 넘나들며, 우리에게 죽음이 생의 한가운데 있다는 것을 낮고 울림 있는 목소리로 전달한다.

 

그의 더 깊은 마지막 이야기를 담기 위한 이어령과 인터스텔라김지수의 라스트 인터뷰1년에 걸쳐 진행된 열여섯 번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새로 사귄 죽음이란 벗을 소개하며, ‘삶 속의 죽음혹은 죽음 곁의 삶에 관해 이야기한다. 삶과 죽음에 대해 은유와 비유로 가득한 유언의 레토릭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감동적이다. 죽음을 마주하며 살아가는 그가 전하는 마지막 이야기는 남아 있는 세대에게 전하는 삶에 대한 가장 지혜로운 답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 스승은 내게 죽음이 생의 한가운데 있다는 것을 가르치고 싶어 했다. 정오의 분수 속에, 한낮의 정적 속에, 시끄러운 운동장과 텅 빈 교실 사이, 매미 떼의 울음이 끊긴 그 순간…… 우리는 제각자의 예민한 살갗으로 생과 사의 엷은 막을 통과하고 있다고. 그는 음습하고 쾌쾌한 죽음을 한여름의 태양 아래로 가져와 빛으로 일광욕을 시켜주었다.”

_프롤로그에서

 

지금 이 순간, 스승이 필요한 당신에게 이 특별한 수업의 초대장을 건넨다. 위로하는 목소리, 꾸짖는 목소리, 어진 목소리. 부디 내가 들었던 스승 이어령의 목소리가 갈피마다 당신의 귓전에도 청량하게 들리기를” _8

[황보 승남 hbs5484@hanmail.net 사진 pixaba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