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으로 읽는 마음 한 줄

실패가 보여줄 찬란한 반란

텅빈충만, 상선약수 2023. 3. 22. 09:56

#. 나는 언젠가부터 진심이 능사라고는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때로는 상대방이 건네는 묵직한 진심들이 정말로 무거워서 끔찍할 때도 있었다. 그 무게감에 몇 번 허덕여본 후에는 자연스럽게 내 진심을 감추는 법도 터득했다. 나이가 들수록 농담만 늘어가는 이유도, 주변인들에게 나라는 무거움을 선사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의외로 누군가와 잘 지내는 데에 꼭 진심이 필요하지도 않았다. 인간관계를 지탱하는 요소는 그보다 단순하고 명료했다. 관계와 상황에 맞는 예의, 약간의 미소 정도면 누구와도 충분했다. 이것은 거짓이라기보다 또 다른 차원의 진심이었다. 단지 나에겐 상대에게 진심을 내보이고 싶지 않다는 의사가 최상위의 진심이라 그렇다. _193~194p, <불통으로 통하는 마음>. 정지음 오색 찬란 실패담. 인터파크 도서.

오늘도 약속을 어기고, 실수를 반복하고, 잘못을 저질렀다. 작심삼일에 그친 계획들은 결국 고스란히 실패 목록이 되어버렸다. 이처럼 좌충우돌, 실수 연발인 일상을 보내며 우리는 가장 먼저 스스로를 구박한다. 나는 왜 이 모양일까? 내 인생엔 혹시 불발탄만 장전되어 있나? 어째서 나에게만 이런 일이?

작가는 좌절을 숨기지 않는 것이 좌절에서 벗어나는 가장 쉬운 방법이었다고 말한다. 자신의 불행과 실수를 위안 삼아 당신의 실패를 껴안으라고 충고한다.

노력 없이 밟는 성공 가도, 나만 잘되기를 바라는 요행, 난데없이 맞는 로또 같은 순간. 그러나 이러한 소망(?)이 얼마나 덧없던가! 세상 누구도 완전무결한 삶을 살 수 없고, 삶의 이력을 모조리 성공으로 채우는 일이란 불가능하다는 것을.

이처럼 성공에 목매는 것보다, 덜 불행하게 사는 법을 찾는 게 더 유익하지 않을까? 숱한 패배 속에서도 단단한 정신만은 기어코 승리하는 삶. 실패한 만큼 성공할 일이 많아 불행하지 않은 삶. 아직 빛나본 적이 없어 어떤 빛을 뿜을지 궁금한 삶. 이러한 기대를 만들어 주는 것이 바로 실패라며, 실패가 보여줄 찬란한 반란을 기대하게 된다.

[황보 승남 hbs5484@hanmail.net 사진 pixaba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