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으로 읽는 마음 한 줄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텅빈충만, 상선약수 2020. 5. 25. 12:41

 

“여행은 세 번에 걸쳐 이루어진다. 여행을 계획하고 상상하면서 한 번, 실제로 여행을 해나가면서 또 한 번, 그리고 그 여행을 기억하고 기록함으로써 완성된다.”

 

『오래 준비해온 대답』은 소설가 김영하가 10여년 전 시칠리아를 여행하며 보고 느낀 것을 생생히 담아낸 책이다. 이 책은 우리가 ‘세 번의 여행’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여행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언제든지 다시 시작될 수 있다는 것을 알려 준다.

 

모든 여행은 ‘오래 준비해온 대답’처럼 시작된다. 여행 후 자신에게 일어난 변화를 모두 알고 난 후에 다시 추억하는 그 여행은 각별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다정하게 다가와 도와주고는 사라지는 따뜻한 사람들, 누구도 허둥대지 않는 느긋하고 여유로운 삶, 장엄한 유적과 지중해. 그곳에서 작가는 자신을 작가로 만들었던 과거를 떠올리고(“어두운 병 속에 가라앉아 있는 과거의 빛나는 편린들과 마주하는 고고학적 탐사”), 오랫동안 잊고 있던 자기 안의 ‘어린 예술가’도 다시 만난다.

 

“왜 노토 사람들은 그토록 먹는 문제에 진지해진 것일까. 혹시 그것은 그들이 삼백 년 전의 대지진에서 살아남은 이들의 후손이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사하라의 열풍이 불어오는 뜨거운 광장에서 달콤한 피스타치오 아이스크림을 먹는 즐거움을 왜 훗날로 미뤄야 한단 말인가? 죽음이 내일 방문을 노크할지도 모르는 일이 아닌가.”_본문 247쪽.

 

작가의 말 처럼 ‘과거의 내가 보내온 편지’ 같은 책이지만 이 책은 결국 미래의 자신에게 보내는 약속 같은 책이 될 수도 있다. 누군가는 언젠가 시칠리아로 떠나게 될 것이고, 그곳이 아니더라도 여향은 장담하건대 후회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2020.6

[황보 승남 hbs5484@hanmail.net 사진 pixaba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