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으로 읽는 마음 한 줄

분절된 시간을 제대로 사유하는 일

텅빈충만, 상선약수 2022. 8. 25. 09:56

#. 모든 말에는 힘이 있다. 특히나 어떤 말은 주술에 가까울 만큼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어, 알지 못하는 새 마음을 파고들어 삶의 각도를 아주 조금 바꿔놓기도 한다. _보름 이후의 사랑, 75

  #, 눈은 손바닥에 닿자마자 녹아 없어졌다. 순간 나는 영원에 대해서 생각했다. 그리고 또다시 믿음에 대해서 생각했다. 언제고 깨어지고 흩어져버릴 유릿조각 같은 믿음에 대해서. 눈이 짰다. _믿음에 대하여, 248

  #. 과거나 미래를 생각하지 않는 게 내 행복의 비결이라고 믿었었는데. 사실 나는 후회하는 것도, 걱정하는 것도 두려워 생각을 멈춰버린 소금 기둥 같은 존재에 불과한지도 몰랐다. _믿음에 대하여, 257

  

연작소설 믿음에 대하여2022 부커상 인터내셔널에 노미네이트 된 작가, 박상영이 그리는 우리 세대의 서늘한 초상이다.

  팬데믹 속 사회적 거리두기와 그로 인한 고립감, 그 안에서 더욱 차별받고 배제당하는 소수자들의 고통이 이야기 속에 절절하게 담겨 있다. “어떤 종류의 이해는 실패하고 나서야 비로소, 삶의 자세로 남기도 한다. 내게는 그 시절이 그랬다.” 어느 누구나 살아가면서 한번쯤은 경험한 깊은 외로움을 느꼈던 순간들.

  소설 속의 이들은 아무것도 작정할 수 없어 끔찍하게 불안하지만, 더 이상 난망한 미래를 향해 투신할 수만은 없다고 느낀다. 이 분절된 시간을 제대로 사유하는 일로부터 다른 내일이 가능해질 것이다.

  일상을 버티며 살아가고 있는 모든 이들이 낙인찍히고 배척당하는 일이 없기를 염원한다.”고 한 작가의 말처럼, 아무리 희망에 취약한 사람이라도 아직도 우리가 갖고 있는 연약한 믿음이 인간을 구원할 수 있다고 믿는다. 절망에 허덕이는 와중에도 그것이 우리의 일이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전부이니까.

  [황보 승남 hbs5484@hanmail.net 사진 pixaba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