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으로 읽는 마음 한 줄

빛나는 아름다움, ‘고향’

텅빈충만, 상선약수 2022. 9. 23. 11:16



#. 선자는 설탕이 냄비에서 녹아 졸아드는 동안 계속 저었다. 부산과 오사카의 삶을 비교하면 생판 다른 생처럼 느껴졌다. 20년 동안이나 돌아가지 못했지만, 그들의 작은 바위섬 영도는 선자의 기억 속에서 더할 나위 없이 생생하고 환하게 남아 있었다. 이삭이 천국을 설명하려고 했을 때, 선자가 마음속으로 그린 천국의 모습은 고향이었다. 투명하고 빛나는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고향 땅의 달과 별에 대한 기억도 이곳의 차가운 달과 별하고는 사뭇 다른 것 같았다. 고국의 상황이 나쁘다고 사람들이 아무리 불평해도, 선자는 유리처럼 반짝거리는 초록빛 바다 옆에 아버지가 아주 잘 관리한 밝고 튼튼한 집, 수박과 상추와 호박을 내주던 풍성한 텃밭, 맛난 것들이 떨어지는 법이 없었던 시장에 대한 추억만이 떠올랐다. 그곳에서 살 때는 그곳을 충분히 사랑하지 못했다. -376

4대에 걸친 재일조선인 가족의 이야기를 그린 세계적 베스트셀러, 이민진 작가의 장편소설 파친코. 이 소설은 일제강점기 부산 영도에서 시작해 버블경제 절정에 이르렀던 1989년 일본까지, 한국과 일본을 무대로 거의 100년에 걸쳐 펼쳐진다.

  작가는 파친코도박처럼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인생의 불확실성을 뜻함과 동시에, 혐오와 편견으로 가득한 타향에서 생존을 위한 유일한 수단으로서 파친코 사업을 선택해야 했던 재일조선인들의 비극적 삶을 상징한다.”고 밝힌 바 있다.

  고향을 떠나 타지에 뿌리내리고 영원한 이방인으로 살아야 하는 이민자의 삶. 가족, 사랑, 상실, 돈과 같은 인생의 모든 문제를 다루면서,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시의적절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계급과 문화 차이로 씨름하는 한 가족의 다채로운 태피스트리. 절묘하게 풀어낸 광범위한 서사는 한국과 일본의 전쟁과 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소속되고자 애쓰며 집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특수한 고통을 선명히 드러낸다. 희망적인 삶을 꾸려가고자 하는 각 인물들의 이야기는 제목인 파친코 게임처럼, 운명의 예측 불허함으로 가득 차 있다.

  해방, 한국전쟁, 분단 등 한국 근현대사와 겹쳐지며,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자이니치(재일동포를 일컫는 말)’의 삶이 눈에 들어오면서 가슴이 먹먹해진다.

  [황보 승남 hbs5484@hanmail.net 사진 pixaba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