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으로 읽는 마음 한 줄

‘늙음 오디세이아’

텅빈충만, 상선약수 2020. 5. 25. 12:37

늙음을 바라보는 시각은 매우 다양하다. 각자의 인생 궤적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어쩌면 늙음을 보편적으로 정의하는 것, 심지어 정의하려는 의도 자체가 딱한 일일지도 모른다.

 

유 형준교수(한림의대 명예교수, 현CM병원 내과)의 ‘늙음 오디세이아’는 이러한 난감함에 대한 정겨운 知的 여행을 선물하고 있다.

 

“늙음은 연구의 대상이라기보다 오히려 서술로 담아내어야 본디 모습이 제대로 드러나는 서사(敍事)의 소재라는 생각이다. 따라서 연구 논문이 아닌 오디세이아와 같은 서사시로 표현하는 게 늙음의 실체에 보다 가까이 다가서는 방식이라 여긴다.” (본문 「늙음의 시학」에서)

 

몸은 늙어도 마음과 인격은 더욱 새로워진다. 더 원숙한 삶이 펼쳐지고 더 농익은 깨우침이 다가온다. 늙은 나이에도 젊은 마음이 있다. 늙었으나 새로운 인격이 있고 젊은 나이에도 낡은 마음이 있다.

 

“사람은 늘 무언가를 향하여 움직인다. 호모 비아토르. 즉 ‘여행하는 인간’이다. 항상 길 위에 있다. 어디론가 향해 가는 중이지 도중에 서 있기를 바라지 않는다.<중략> 여기서 이야기하는 길은 이동의 공간만을 일컫는 건 아니다. 과거 현재 미래, 탄생에서 죽음, 사람과 사람 사이, 개인과 사회 간 모든 이동의 통로와 과정을 아우른다.” (본문 「호모 비아토르」에서)

 

이 책은 늙어가는 수많은 현상을 바라보면서 ‘늙음이란 위대한 예술이다’(Art of Aging) 말을 마음에 담아두게 한다.

 

사실 ‘늙음 오디세이아’를 읽으면서 문득 떠오르는 생각은 “철이 든다는 것”에 대한 자각이다. 기독교적으로 보면 철이 든다는 것은 하나님의 시간을 내안에 담아내는 것을 말한다. 철이 든 사람은 일어날 때를 알고, 앉을 때를 알고, 말할 때를 알고, 침묵할 때를 아는 사람이다. 우주의 계절이, 하나님의 계절이 자기 안에 정착한 사람을 말한다.

 

불란서 종교화가 조르주 루어(Georges Rouault)는 “마음이 고결할수록 목덜미는 덜 뻣뻣하다”고 했다. 고결한 영혼은 훌륭한 태도를 갖추고 사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리라. ‘늙음 오디세이아’를 관통하는 흐름은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어떤 태도로 대하는지가 우리의 영혼을 말해주고 있는 것”임을 일깨워 준다.

 

고대 그리스의 시인 호메로스의 대서사시 ‘오디세이아’는 복잡하며 기교적이다. ‘늙음 오디세이아’는 “슬몃슬몃 다가온 늙음일까. 아니면 스스로 슬그머니 다가가 늙음 속에 들어가고 있는 걸까. 어느 쪽이든 지금은 늙음이 넌지시 내민 손을 꽉 잡고 늙어가고 있다. 늙음을 영절스레 서사할 재간은 없다.”<저자 책머리에서> 지만 더 춥고 더 건조한 삶의 현장에서 함께 읽을 수 있는 따뜻함.

 

한 편의 詩로 정겨움을 나누고 있다. 늙음에 관한 지적 여행을 서사적으로 풀어 낸 책이 ‘늙음 오디세이아’ 이다.2020.2 [황보 승남 hbs5484@hanmail.net 사진 pixaba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