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으로 읽는 마음 한 줄

“…마음의 주인이 되어라”

텅빈충만, 상선약수 2020. 5. 25. 12:36

 

'일생 동안을 중노릇할 것은 아니다. 얼마간의 수도(修道)를 쌓은 뒤엔 다시 세상에 나아가 살 것이다. 그동안만은 죄인이다. 죽일 놈이다.'(1956년 3월)

법정 스님(1932~2010)이 출가할 때 생각은 '도 닦고 돌아오는 것'이었다. 그러나 3년 후 편지에선 '금생(今生)뿐이 아니고 세세생생(世世生生) 수도승이 되어 생사해탈(生死解脫)의 무상도(無上道)를 이루리라'(1959년 3월)고 적었다. 그사이 서명도 '죽일 놈의 형'에서 '법정 합장'으로 바뀌었다. 스님 생전의 표현을 빌리자면 '풋중'에서 '중물'이 들어가는 과정이다.

법정 스님이 출가하던 1955년부터 1970년까지 여덟 살 아래 사촌 동생 박성직(77)씨에게 보낸 편지글이 책으로 엮였다. '마음에 따르지 말고 마음의 주인이 되어라'(책읽는섬). 편지글과 연관된 스님의 생전 글을 함께 실어 상관관계를 볼 수 있도록 엮었다.

어려운 살림에 대학 진학까지 한 자신이 집안의 기대를 저버리고 출가한 데 대한 미안함과 속세에 남은 가족에 대한 애틋함, 그리고 남겨둔 책과 밀레 그림 '만종'의 안부까지 묻는 다정다감함을 보여준다. 한편으론 매몰차다.

 

'나라는 존재는 그저 먼 날에 죽어 버렸거니 생각하여라.'(1957년 7월) 1970년 11월 마지막 편지는 성직씨 아버지이자 스님의 작은아버지 부음(訃音)을 듣고 보낸 것. '오늘은 법당(法堂)에 들어가 많이 울었다.' 31세 스님의 모습이 새롭다. 2020.1

【황보승남, 사진 pixaba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