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 현정 소장은…
신현정(50)은 의사가 되리라고는 꿈도 꾸지 않았다. 막연하게 기자가 멋있어 보여 기자가 되고 싶었다. 학력고사 성적이 문제였다. 점수가 예상보다 많이 나오지 않아 판사를 희망했던 아버지의 바램은 약대를 주문했지만 의예과를 고집하여 의대를 다니게 되었다.
그러나 80년대 한국 대학의 상황은 그를 공부에만 집중하도록 놓아두지 않았다. ‘고지식한 정의감’에 불탔던 ‘범생이’는 학생운동에 몰두하게 되었고, 뜻하지 않은 감옥살이를 하게 된다. 그리고 제적과 복학. 의료의 공공성이라는 화두에 집착하게 된 것도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다.
직장의료보험과 지역의료보험의 통합이라는 사회적 갈등과 의약분업의 시행, 최근의 의료 민영화 논쟁까지. 의료는 공공재라는 기본 인식이 무너져 가고, 건강이 상품화되어 가는 현실이 “너무 가슴 아팠다. 이건 아니다”라는 한탄과 무력감을 떨칠 수 없었다.
신 현정은 입학한지 10년만에 어렵게 의대를 졸업한다. 그리고 충북 영동군의 황간에서 3년 동안 개업, ‘현실 안주’의 길을 밟는다. 그 후 포괄적 의료에 매력을 느껴 가정의학을 전공하게 되고, 지방의 종합병원 가정의학과장을 거친다.
그런 그가 올 초 대전 유성구보건소장으로 새로운 출발을 했다. 정확히 트라우마는 아니겠지만 항상 빚을 진거 같은 마음이 아니었을까? “의사라는 전문성과 민주시민으로서의 사회적 책임을 위해 노력했다고 자부하지만 한편으로는 직업인 의사의 한계라고 할까 수익을 위해 타협할 수밖에 없는 현실 속에서 많은 자괴감을 갖기도 하였습니다.” 정기적인 의료봉사와 무료진료, 여러 사회단체에서의 활동에 대한 주변의 호의적인 시선도 적지 않았지만, 스스로 충족되지 않는 빈 구멍, 그 간격을 메울 수 없었다.
“흔히 얘기하는 스펙은 별로 없습니다. 다만 지난 4년간의 개업과 수년간 봉직의로 근무했던 병원에서의 경험을 통해 환자의 고통과 눈물, 불편함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 동안 사회운동에 참여했던 정열을 기반으로 보다 나은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 수 있는지에 대해 더 많은 고민을 해나가겠습니다.” 상품이 아닌 오로지 사람을 위한 보건의료제도와 정책을 만들어 나갈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왜 공직에 몸담게 되었는가에 대한 대답이다. “보건소가 할 수 있는 기능과 역할, 이에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예산과 인력의 한계가 있기 때문에 제가 하고 싶은 일을 원활하게 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민이 참여하고 주민이 주인이 되는 사랑받는 보건소가 되도록 주위의 동료, 선후배 직원들과 함께 노력해 나갈 것입니다.”
-보건복지부의 2010년도 보건사업평가에서 최우수 보건소로 선정되었다.
“보건소에 근무하는 직원 모두가 한 마음으로 일궈낸 성과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한 맞춤형 방문건강관리사업과 금연·절주·영양 등 지역 실정에 맞는 건강행태 개선사업이 상당한 효과를 거두었다. 구강보건, 모자보건, 암 관리, 정신보건, 치매상담관리센터 등 지역보건 의료사업 전 분야에 걸쳐 높은 점수를 받았다.”
-올해 정책 비전과 추진 전략은?
“‘온 구민이 함께하는 건강 100세 구현’을 비전으로 취약계층의 건강권 보호 및 사회 안전망 확보, 건강증진을 통한 삶의 질 향상, 건강형평성 확보에 주력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맞춤형 방문건강 관리 사업 강화 등 빈틈없는 건강보호, 건강100세 프로그램 운영 등 생애주기별 건강증진 조성, 지역사회 만성병 건강조사 사업 등 건강도시 구현에 전략을 집중할 방침이다.”
-특히 치매예방관리 사업에 중점을 두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제5기 지역보건의료계획 중점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다. 고령사회의 대표적인 질환인 치매로 인한 사회·경제적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는 조기 발견 및 치료할 수 있는 여건 조성이 가장 시급한 과제다. 치매상담센터 운영 등 치매 노인 등록·관리체계의 구축으로 맞춤형 치매관리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보건소의 미래설계는?
“급속한 고령화로 인해 질병양상도 만성질환으로 전환되고 있다. 그에 따른 부양비, 의료비 부담이 증가하고 있어 건강정책의 패러다임도 ‘질병치료’에서 ‘사전예방’으로 변화하고 있다. 당연히 보건소의 역할도 변해야 한다. 이러한 패러다임 변화에 맞추어 구민 누구나 건강하게 살 수 있는 환경조성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보건소가 표준화 된 질병 치료법을 직접 제작하여 교육하고, 다른 의료기관의 모범이 될 수 있는 예방기관으로써의 역할 증대에 노력할 계획이다.”
-공직에 대한 부담도 적지 않을 것 같은데.
“방송인 유 재석의 진행 스타일을 좋아한다. 부드러우면서도 제 할 일은 다하고 성과를 내는, 부드러우면서도 때로 강할 수 있는 유연함을 배우고 싶다. 일은 결국 사람이 한다. 모든 문제를 서로 솔직하게 대화하면서 풀어나가겠다. 솔직함이 담보되면 더 많은 사람들이 더 많은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논의하며, 비판하는 가운데 문제를 개선해 나갈 수 있다는 생각이다.”
신 소장은 이념적으로 함 석헌 선생을 존경한다. 인간을 억압하는 구조적 폭력을 단호하게 거부하면서도 노장 사상을 몸으로 살아낸 자연생태주의자. ‘씨 ’은 기본적으로 ‘생명’, ‘스스로 그러함’(自然)에 대한 경외감을 반영해준다고 했다. 정기적으로 열리는 ‘씨 의 소리’ 강연회에도 빠지지 않고 출석한다. 김 경재 한신대 명예교수(씨알사상연구원장)는 ‘씨알 생활 좌우명 10조’ 가운데 하나로 “만나는 사람에게 작은 친절, 작은 도움을 주는 것이 더불어 사는 세상 만들기의 첫걸음임을 알고 실천한다(작은 것이 아름다운 삶).”라고 한바 있다.
신 소장은 “이제 새로운 일을 시작하면서”, 이런 다짐을 했다. 가진 것이 없기에 잃어버릴 것도 없는 ‘맨 사람’ 씨 은 ‘스스로 함’의 표상이다. 신 소장은 그 작은 사회적 실천을 보건소에서 이루려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능력의 어떤 부문을 DNA로 물려받는다. 카드놀이 할 때 주어진 패와 같다. 하지만 그 패를 어떻게 사용하느냐는 유전자가 아니라 우리 자신에게 달린 문제다. “평화롭고 평등한 사회”를 꿈꾸는 신 소장에게 있어 행복이란 더불어 함께 하는 공동善의 실현이다.
황보 승남국장/hbs548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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