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시대의 주역, 보건소장

강 성구순천향대학교 부천병원 내과교수

텅빈충만, 상선약수 2011. 12. 16. 09:33
2011년 11월 복지시대의 첨병
순천향대학교 부천병원

 

'환자 의사'가 내리는 따뜻한 사랑의 처방전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肝,나눠 써야죠."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했지만 한없이 고맙고,

미안하고…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 "아버지가 주신 肝, 나눠 써야죠"

2004년 9월이었다. 혈관출혈이 심해지고, 복수가 차고, 숨이 막혀 여간 고통스럽지가 않다.

간암 및 간 경화증 진단을 받았다. 그래도 진료는 봐야 했다. 전국 각지에서 밤잠을 설치고 찾아 온 환자들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가장 소중한 책무를 소홀히 할 수는 없었다. 죽는 날 까지 환자는 보리라. 그러나 손이 떨리고 쥐가 나서 차트를 넘길 수가 없다. 왼쪽 팔에 알부민을 꼽고, 환자가 대신 넘겨주는 차트를 보며 간신히 진료를 보는 것도 한계에 다다랐다. 그나마 의사였기에 다양한 방법을 모두 사용했지만 백약이 무효. 외과계열에서는 포기한 상태. 남은 유일한 치료는 간 이식뿐 이었다.

서른셋의 아들이 수차에 걸쳐 "아버지가 건강해야 환자를 보살펴 줄 수 있는 것"이라며, 간곡하게 설득했지만 선뜻 받아들이기엔 그 짐이 너무 무거웠다.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肝, 나눠 써야죠."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했지만 한없이 고맙고, 미안하고…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다행이 이식 적합 판정을 받았고, 2006년 6월 간 이식에 성공했다. 아들의 박사학위 취득은 늦어지고, 직장생활도 그 만큼 뒤로 밀렸다. "아버지 사랑합니다." 아들의 정성 어린 마음과 가족들의 사랑으로 회복 속도가 빨랐다. 그리고 한 2년은 조심스럽게 건강관리에 집중 했다. 피로하지 않을 정도의 규칙적인 운동과, 철저한 혈당관리. 지금도 항 면역제제를 투여하고 있지만 "10년 전의 건강상태를 유지하게 되었다.

" 그만큼 환자진료에도 더 많은 정성을 기울이게 되었고, 자신의 아팠던 경험을 들려주는 것이 가장 큰 치료가 되었다. 부자간의 특별한 사랑 나눔을 통해 이제 더 많은 환자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이식하고 있다.

 
강성구 순천향대학교 부천벼원 내과교수
 
▲환자들에게 희망을 이식하고 있는 강성구 교수.

 

나도 당뇨병 환자 입니다.

중요한 것은 열심히 사는것 입니다.”

나도 당뇨병 환자 입니다

강 교수는 당뇨병 환자다. 당뇨병의사가 환자라는 사실을 숨기 지 않고 있다. 일부러 알리고 다닌다. 그럼으로써 환자들에게 치료와 관리방침을 더 설득력 있게 소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당뇨가 문제였지만 그보다 먼저 간경화증이 나타났다.

“아마 80년 무렵일 겁니다. 술 때문에 간경화가 왔어요. 교과서에 따르면 내 병증은 살 확률이 2%에 불과했어요. 천행으로 그 2%에 들어 살아남았는데, 그때 다짐한 게 있어요. ‘만약 내가 이승 밥을 더 먹을 수 있다면, 나의 모든 것을 병든 이를 위해 바치겠다.’고. 그 때 부터 오로지 환자를 위해 모든 것을 쏟아 부었다.

“2000년인가요. 그때도 국내·외 곳곳에서 학술행사가 많아 무척 바빴어요. 외국 학술행사에 참석했다가 새벽에 도착해 종일 강의하고, 진료하고 그런 식이었지요. 그 때 데미지가 컸었던가 봐요. 갑자기 이가 쑥쑥 빠지는 거예요. 그래서 확인해 보니 당뇨 합병증이더라고요.”이가 몇 개나 빠졌느냐고 묻자 “남은 걸 세는 게 훨씬 빠를 것”이라며 “여덟 개 남고 다 빠졌다.”고 했다. 그런 그에게 2004년 9월 간암 및 간경화증 진단은 그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

“중요한 것은 열심히 사는 것

바닥 모르고 마셔대던 술부터 줄였다. 그의 주량은 웬만한 의료인이라면 다 아는 사실. 술잔은 들었다 놓기만 했다. 밥도 철저히 칼로리를 계산해 한계를 지켰다. 좋아하던 담배도 끊었다. 모든 당뇨병 환자에게 의사들이 내리는 처방이지만 대부분 잘 지키지 않는다. 운동도 빼놓을 수 없었다. 하루 1시간은 운동을 했다. 점심시간에 20분, 환자 진료 후 연구실에 돌아갈 때 5분 등 자투리 시간을 모두 뛰는데 썼다. 하루 10㎞씩, 일주일에 4-5일 뛴 셈이다. 환자끼리 교대하는 30초 정도의 비는 시간에도 의자에서 일어나 기마자세로 앉았다가 가슴, 배, 허리, 엉덩이를 차례대로 위로 밀면서 일어서는 허리 근력강화 운동을 했다.

“틀림없는 것은 당뇨병이 무섭다는 것인데, 예컨대 당뇨환자가 암에 걸릴 확률은 정상인보다 4∼6배나 높고, 심근경색의 40% 이상이 당뇨성이거든요. 그래도 희망은 있습니다. 당뇨병이 무섭지만 관리만 잘하면 최소한 병증의 심화를 저지하거나 개선시킬 수 있습니다.”

약으로 몸을 정상으로 돌려놓아도 생활이 과거와 같다면 또 병에 걸릴 수밖에 없으며, 죽는다는 각오로 생활습관을 개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체험이 환자들에게 보다 진솔하게 다가갈 수 있어 너무 고마웠다.

“중요한 것은 열심히 사는 것입니다. 당뇨병을 앓고 있지만 건강 강박증 같은 건 없어요. 물 흐르듯 사는 삶이 아름답지 않습니까?”

당뇨병, 낚시 바늘의 위험

같은 학문을 하면서 “어려울 때 마다 슬기롭게 헌신적으로 도와주어 너무 고마운”(강 교수의 말) 유 형준교수는 강 교수의 정년퇴임식에서 그를 일컬어온유(溫柔) 박동으로- 이 들녘 기쁨처럼 바위로 흐르는 가”라고 했다.

유 교수의 표현처럼 강 교수는 谷水(골자기에 흐르는 물)로 살다 稚愚(어린 어리석음)를 깨닫고, 지금은 道에 심취해 있다. 우연히 어린 손자의 질문에서 문득 얻은 소득이다. 강 교수는 道란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경험을 통해 얻어지는 과정이고 길이라고 했다.

사람은 저 마다 내면에 고통을 갖고 산다. ‘상처’라고 부르는 것들이다. 강 교수는 몇 번의 죽을 고비와 아들의 사랑, 그리고 환자들을 보면서 그 상처를 “더 이상 피하지 말고 따뜻하게 인사하고, 안아주게 되었다.”

필요하다면 “함께 울어 주고, 보챌 때 마다 곁에 앉아 함께 숨을 쉴 수 있게 되었고, 고통스러운 감정을 보살피려면 먼저 고통 받지 않은 감정, 즉 기쁨과 행복을 보살펴야 한다.”는 생각으로 진료를 하고, 사람들을 만났다. 그러므로 道란 어려운 것이 아니고 그냥 일상생활이며 경험에서 얻는 지혜의 길인 것이다.

수술 받을 환자가 너무 허약할 땐 먼저 충분히 영양을 섭취하고, 쉬어서 체력을 기르도록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강 교수를 만나면서 틱낫한 스님의 말씀이 몇 번이나 오버랩 되었다.

“물고기는 맛있어 보이는 미끼를 보면 물어 버린다. 미끼 안에 낚시 바늘이 있다는 걸 모른다. 깨어 있을 때, 우리는 쾌락의 추구에 내포된 낚시 바늘의 위험을 알아차릴 수 있다.”

당뇨병을 포함하여 모든 아픈 환자에게 이 보다 적확한 비유가 있을까?

“우울했던 환자가 진료를 받고 나가면서 웃을 수 있도록, 건강이 허락하는 한 환자를 볼 수 있는 이 축복을 영원히 잊지 않겠다.”

‘환자 의사’가 내리는 사랑의 처방전은 그래서 값지고 따뜻하다.

 

 
 
 

 

 

■ 강 성구 교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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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뇨병학회 새로운 시대 열어

강 성구 교수는 당뇨병학회 40년사에 중요한 이정표로 평가 받고 있는 이사장제 도입을 최초로 제안했고, 2000년 초대 이사장과 2003년 회장을 연이어 맡으면서 "학회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한림의대 유 형준교수).

이사장제도의 도입은 당시 회원 수가 늘어나고 각종 학회 사업이 증가하면서 회장제 만으로는 일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면서 필요성이 자연스럽게 제기되었다. 강 교수는 이사장제도 도입을 계기로 유 형준 교수 등의 적극적인 도움을 받아 당뇨교육간호사회, 당뇨교육영양사회, 당뇨교육사회복지사 등과 소위 co-medical part 협조체제를 구축하는 한편 제2의 학회지 성격인 「임상 당뇨병」을 창간했다. 「임상 당뇨병」은 당뇨환자를 진료, 교육, 관리하는 의사, 간호사, 영양사 등이 갖고 있는 각자의 임상경험과 지식을 서로 공유하게 함으로써 당뇨관리의 실질적인 임상 전문지로 자리 잡았다.

이와 함께 강 교수는 주로 개원의들에게 당뇨병의 진단 및 적절한 치료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교육하는 단계별 당뇨관리(SDM)교육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SDM은 1989년 IDC가 임상의사와 당뇨병 교육자를 위해 개발한 치료 가이드라인으로 당뇨병환자의 치료와 관리를 체계적으로 접근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제시해 주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이 기간 강 교수는 당뇨버스 등을 적극 활용하는 한편 학회의 많은 회원들이 TV와 라디오 등 각종 언론매체에 출연, 당뇨병에 대한 대국민 홍보 활동을 전개함으로써 질환의 조기 발견, 조기 치료에 획기적인 성과를 거두는 전기를 마련했다. 이러한 결실로 2003년 11월 마침내 정부가 당뇨병을 ‘국가관리 만성질환’으로 지정하게 되었다.

강 교수가 당뇨병학회장을 역임하면서 가장 획기적인 성과로 주목 받았던 것은 2006년 IDF대회를 서울에 유치한 것과 IDF-WPR 회장직을 한국에 가져 온 것이다. IDF대회는 외부적인 요인으로 취소되어 아쉬움을 남겼지만 대회유치를 위한 헌신적인 열정은 그 후 당뇨병 학회의 내실 강화를 위한 주요한 지렛대가 되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학력 및 경력]◆주요 약력: 1971년 가톨릭의과대학 졸업. 1972년-1974년 카톨릭의대 의학석사, 1974년-1979년 가톨릭의대 의학박사, 1979년-2010년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1989년-2000년 가톨릭대학교 내분비학과 학과장, 1999년-2001년 가톨릭대학교 부천 성모병원 의무원장 ◆수상: 2008년 4월 대통령 표창, 2010년 11월 옥조근정훈장 ◆학회활동 1984년-1985년 대한핵의학회 간행이사, 2000년-2001년 대한당뇨병학회 이사장, 2003년-대한당뇨병학회 회장, 2003년-2006년 세계 당뇨연맹 아시아 태평양지역 회장, 2004년-대한내분비학회 회장, 2000년-2010년 (사)한국당뇨협회 회장 ◆저서: 내분비학, 당뇨병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