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으로 읽는 마음 한 줄

“기본으로 돌아간다는 것”

텅빈충만, 상선약수 2020. 11. 26. 07:59

  

朝益暮習 小心翼翼 一此不懈 是謂學則”, 다산의 이 말은 외면의 엄정함을 말하고 있다. 내면을 잘 갖췄다면 겉으로 드러날 수 있어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수양은 깊은데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은 거칠어 보인다. 하지만 내면은 잘 갖춰져 있지 않은데 겉만 번드르르한 사람은 스스로의 삶마저 기만하게 된다. 겉과 속이 잘 어우러져야 어른다운 어른이라 할 수 있다. <다산의 마지막 습관, 조 윤제 >

 

 

무엇으로 나를 다시 채울 것인가? 다산 정약용이 육십 년 공부의 정점에서 모든 성취를 내려놓고 선택한 생의 마지막 습관, '기본으로 돌아가는 것.' 그리고 어렸을 적 배웠던 소학을 다시 펼쳐 매일 새롭게 자신을 채우고자 했다.

 

 

다산은 이렇게 말한다. “궁리란 심오한 이치를 깊이 공부하며 만 가지 변화를 두루 섭렵하는 데 이르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날마다 일상에서 행하는 평범한 도리를 헤아려 말없이 마음속에서 나누어 살피는 것이다.”

 

 

인간다움이란 더불어 사는 삶이고, 나와 남 모두에게 최선을 다하는 행위의 실천이며 그것을 이끌어내는 격, 어른다움이다. 바로 어린 아이에게 어른다움을 가르쳐주는 소학이 추구하는 바와 상통한다.

 

 

문득 이런 의심이 든다. 내가 지혜라고 여겼던 것들이 사실은 편견은 아니었을까? 세월에 단련되어 단단해진 것이 아니라, 세월에 길들여져 딱딱하게 굳어진 것은 아닐까? 나를 형성한 나이테에 갇혀 그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익숙해서 습관이 되어버린 일상들을 반복하면서 서서히 인생의 하강곡선을 그릴 것 같아서다.

 

 

공자가 말했듯이 그 어떤 높은 이상도 땅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자신은 물론 온 집안이 부도덕한 사람이 사회의 정의를 부르짖는다면 우스꽝스러워 보일 뿐이다. 아무리 높은 이상도 그 시작은 현실에 발을 딛고 있는 자신이다. 그리고 자신이 만들어가는 일상이다. 일상에서 증명되지 않으면 그 어떤 것도 인정받을 수 없다.

 

 

[황보 승남 hbs5484@hanmail.net 사진 pixaba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