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으로 읽는 마음 한 줄

현재에 집중하는 삶의 가치

텅빈충만, 상선약수 2024. 10. 22. 08:59

#. 우리는 분명 다른 사람의 눈에 연인처럼 보일 것이다. 그러나 정체는 수명이 얼마 남지 않은 여자와 날 수 없는 스노보드 선수. 죽음이라는 목적지를 향해 여행하는 여자와 그 여행에 동반자로 나선 남자라는 기묘한 조합. 우리에게는 미래가 없었다. 하지만 리이는 옆에 앉은 커플보다도, 안쪽에 앉은 모임에 참석한 여자들보다도 행복하다는 듯 미소 지으며 언제나처럼 말했다. “, 맛있었다. 잘 먹었습니다!” _77

 #. 솔직하게 인정했다. 트라우마를 안게 되고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속마음이다. 나조차도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한심할 정도로 나약한 감정. 그러나 이상하게도 오늘만큼은 리이에게 내 형편없는 모습을 보여주는 데 거리낌이 없었다. 시한부 인생임을 솔직하게 고백하고 마지막 날까지 즐겁게 식사를 만끽하고자 하는 리이에게 내 진짜 모습을 속인다 한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_164쪽 미나토 쇼 네가 유성처럼 스러지는 모습을 지켜볼 운명이었다

백 끼의 식사가 끝나면 죽음에 이르는 (餘命百食)에 걸린 맛집 블로거 리이. 시한부 인생이지만 마지막 날까지 즐겁게 식사를 만끽하고자 여행 메이트를 찾던 중 토우야를 만났다. 자신의 블로그를 아는 데다 입맛도 비슷한 토우야에게 맛있는 거 찾아다니는 여행 하자! 우리 둘이!”라고 제안한다.

둘의 모습은 그래, 사랑은 이런 거였지.’라며 잊고 있던 감정을 떠올리게 한다. 나 혼자 떨어진 것 같은 이 세상에 내 편이 있다는 든든함. 평소의 나라면 하지 않았을 행동을 서슴없이 하게 만들고, 대책 없는 상황에도 무작정 뛰어들게 만드는 사랑의 힘. 하지만 끝이 정해져 있는 사랑을 시작할 수 있을까? 이들에게 허락된 운명은 함께 맛있는 음식을 먹고 영원한 이별을 맞이하는 것뿐일까?

죽음이라는 공통점으로 만난 두 사람이 서로의 꿈을 응원하는 이야기는 진정한 삶의 의미를 깨닫게 만든다. 시한부 인생이라는 현실의 벽을 두고도 지금 눈앞의 연인을 마음껏 사랑하는 모습은, 미래를 약속할 수 없어도 지금의 시선이 서로를 향해 있다면 누구도 부러워할 것 없이 행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우리 모두가 어찌 보면 여명백식의 잠복기를 앓고 있다. 허락된 식사가 백 끼밖에 남아 있지 않은 날이 언젠가 찾아오기 마련이다. 그러기에 현재에 집중하는 삶이 얼마나 가치 있는지를 두 사람이 증명해낸다.

[황보 승남 hbs5484@hanmail.net 이미지=Microsoft Bing, DALL·E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