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으로 읽는 마음 한 줄

“만날 수 없는 누군가가 그리울 때”

텅빈충만, 상선약수 2021. 5. 20. 10:50

#. 지금 어머니가 지내는 곳이 여기서 지척이다. 홍제천 밤길을 걷기로 하고 나설 때 제일 먼저 떠오른 사람이 어머니였다. 요양원에 계신 지 오래된 어머니에게 물었다. “제일 하고 싶으신 일이 뭐예요?” 어머니는 요 근처 인왕시장에 가서 과일을 사고 싶다고 하셨다. 재래시장에 가서 과일 한 알 사는, 그 아무것도 아닌 일이 누군가에게는 가장 간절한 소망이자 가장 큰 행복일 수도 있는 것이다. p.84, 엄마에게 걸음으로 부치는 밤 편지중에서.

 

#. 상처가 흉터로 아물면 통증은 사라지지만 기억은 언제까지고 사라지지 않는다. 억지로 가리고 덮는다고 될 일이 아니다. 좋은 시간은 좋은 시간대로, 나쁜 시간은 나쁜 시간대로 기억해야 한다. 그래야, 잊지 말아야 할 것을 잊지 않을 수 있다. p.273,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오는 풍경중에서. 유희열 밤을 걷는 밤, 나에게 안부를 묻는 시간

 

뮤지션 유희열이 서울의 동네 구석구석을 걸으며 마음속에 들어온 풍경을 글로 담아냈다. 천천히 밤을 걸으며 우연히 마주친 순간은 지난 추억을 떠오르게 하고, 친한 친구를 생각나게 한다. 시원한 밤공기가 더욱 그리운, 지금 이 계절에.

 

우리는 늘 그리워한다. 언제나. 나이가 들면 더더욱. 이 섬세한 정서는 무력하고 무거운 마음을 한 자락씩 일으켜 당장이라도 집밖을 나서 자기만의 길을 걷고 싶게 한다. 마음이 답답할 때, 생각하고 싶지 않을 때, 만날 수 없는 누군가가 그리울 때, 사는 게 문득 견딜 수 없이 시시하게 느껴질 때, 거리로 나서 천천히 걸어보자.

 

평범했던 일상이, 기억 속 저 멀리 자리한 추억이 되어버린 요즈음. 온전히 나와 내 발걸음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 조금만 짬을 내어 걸어보면 어떨까? 힘든 하루 속 작은 쉼표는, 생각보다 우리 가까이에 있었을 지도 모른다.

 

오늘의 풍경도 언젠가 누군가에게는 거짓말 같은 풍경이 될 것이다. 그러니 부지런히 기억 속의 사진을 찍어두자. 이제는 만날 수 없는 어머니와 그 길을 함께 걷고 싶었다고, 그랬다면 내게 해줄 얘기가 참 많았을 거라고. 이제 그 길을 혼자 걷는다.

 

마음속에 언젠가 거짓말 같은 추억이 될 풍경을 새기며. 오늘은 언젠가 사라질 애틋한 풍경으로, 훗날의 누군가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로 덧칠하며, ‘견디는 삶을 떠나 만끽하는 삶으로 가는 길을 추억하고 싶다.

 

[황보 승남 hbs5484@hanmail.net 사진 pixaba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