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 어머니가 지내는 곳이 여기서 지척이다. 홍제천 밤길을 걷기로 하고 나설 때 제일 먼저 떠오른 사람이 어머니였다. 요양원에 계신 지 오래된 어머니에게 물었다. “제일 하고 싶으신 일이 뭐예요?” 어머니는 요 근처 인왕시장에 가서 과일을 사고 싶다고 하셨다. 재래시장에 가서 과일 한 알 사는, 그 아무것도 아닌 일이 누군가에게는 가장 간절한 소망이자 가장 큰 행복일 수도 있는 것이다. p.84, 「엄마에게 걸음으로 부치는 밤 편지」 중에서.
#. 상처가 흉터로 아물면 통증은 사라지지만 기억은 언제까지고 사라지지 않는다. 억지로 가리고 덮는다고 될 일이 아니다. 좋은 시간은 좋은 시간대로, 나쁜 시간은 나쁜 시간대로 기억해야 한다. 그래야, 잊지 말아야 할 것을 잊지 않을 수 있다. p.273,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오는 풍경」 중에서. 유희열 著 ≪밤을 걷는 밤, 나에게 안부를 묻는 시간≫
뮤지션 유희열이 서울의 동네 구석구석을 걸으며 마음속에 들어온 풍경을 글로 담아냈다. 천천히 밤을 걸으며 우연히 마주친 순간은 지난 추억을 떠오르게 하고, 친한 친구를 생각나게 한다. 시원한 밤공기가 더욱 그리운, 지금 이 계절에.
우리는 늘 그리워한다. 언제나. 나이가 들면 더더욱. 이 섬세한 정서는 무력하고 무거운 마음을 한 자락씩 일으켜 당장이라도 집밖을 나서 자기만의 길을 걷고 싶게 한다. 마음이 답답할 때, 생각하고 싶지 않을 때, 만날 수 없는 누군가가 그리울 때, 사는 게 문득 견딜 수 없이 시시하게 느껴질 때, 거리로 나서 천천히 걸어보자.
평범했던 일상이, 기억 속 저 멀리 자리한 추억이 되어버린 요즈음. 온전히 나와 내 발걸음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 조금만 짬을 내어 걸어보면 어떨까? 힘든 하루 속 작은 쉼표는, 생각보다 우리 가까이에 있었을 지도 모른다.
오늘의 풍경도 언젠가 누군가에게는 거짓말 같은 풍경이 될 것이다. 그러니 부지런히 기억 속의 사진을 찍어두자. 이제는 만날 수 없는 어머니와 그 길을 함께 걷고 싶었다고, 그랬다면 내게 해줄 얘기가 참 많았을 거라고. 이제 그 길을 혼자 걷는다.
마음속에 언젠가 거짓말 같은 추억이 될 풍경을 새기며. 오늘은 언젠가 사라질 애틋한 풍경으로, 훗날의 누군가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로 덧칠하며, ‘견디는 삶’을 떠나 ‘만끽하는 삶’으로 가는 길을 추억하고 싶다.
[황보 승남 hbs5484@hanmail.net 사진 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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