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으로 읽는 마음 한 줄 67

지혜롭게 산다는 것

#. 감정은 그대로 놓아두면 충분하다. 그 감정에 대해 어떤 판단도 보태지 않고 내가 어떤 상태인지 알고 받아들이는 것만으로 충분히 지혜로워질 수 있다./언젠가 정말 힘들었다면 그래도 지나갔다는 것을 기억해보라. 지금이 만약 가장 힘들다면 그동안의 경험으로 보아 이런 순간도 지나간다는 것을 잊지 말자./고통과 고난은 삶의 필수적인 부산물이다. 그렇다면 그 고통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고 보면 된다. 이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지혜를 발휘하는 것뿐이다. 우리에게 닥치는 대다수 일은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상적인 사건이지만 이후 느끼는 부당함과, 심한 모욕감, 울분 등은 온전히 나의 것이다. 그리고 사실 정말 중요한 일은 누구에게도 말하기 어렵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지혜가 필요하다..

“건강하게 나이 든다는 것”

“객관적인 사회적 고립감은 사망 위험도를 29%까지, 주관적인 고독감은 26%까지 높인다. 그리고 객관적으로나 주관적으로나 모두 고독감을 느낀다면 100세까지 장수할 가능성은 곤두박질친다. 고립감과 고독감의 영향이 누적되기 때문이다. 만약 객관적으로나 주관적으로나 도와줄 사람들이 있음을 말해주는 여러 가지 긍정적 지표가 늘어나면, 우리의 생존 가능성은 무려 91%까지 높아진다. 유기농 구기자를 먹고 팔굽혀펴기를 해도 이런 정도의 수명 연장 효과에는 얼씬도 못 한다.” 코로나 시대에 필요한 건강법은 홈트도 건강식품도 아닌 사회적 관계라는 주장이다. 1960년 펜실베이니아 중부에 있는 마을 로제토는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곳이었다. 하지만 65세 미만의 로제토 주민 가운데 심장병을 앓는 사람이 없었다. 연구..

'작게, 아주 작게 시작하라'

“사소한 행동은 멋있게 보이지 않을지 몰라도 실행하기 쉽고 지속가능하다. 실제로 사람들이 이루고 싶은 삶의 변화는 대부분 중대하고 대담한 조치보다 작고 은밀한 행동을 통해 얻어진다. 어떤 행동에 많은 판돈을 걸수록 자기비판과 실망도 큰 법이다. 우리는 동기가 큰일을 벌이도록 부추기다가 상황이 어려워지면 슬그머니 빠지기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다. 우리는 종종 신체적, 정서적, 정신적 역량을 넘어서도록 자신을 몰아붙이곤 한다. 인간은 그런 노력을 잠깐은 할 수 있지만 지속적으로 할 수는 없다. 《습관의 디테일, '작게 아주 작게 시작하라' 중에서)》 스탠퍼드대 행동설계연구소장이 20년간 6만 명의 삶을 추적해 완성한 습관 설계 법칙, 《습관의 디테일》이 보여주는 지혜는 바로 브라질에 있는 나비의 ..

“기본으로 돌아간다는 것”

“朝益暮習 小心翼翼 一此不懈 是謂學則”, 다산의 이 말은 외면의 엄정함을 말하고 있다. 내면을 잘 갖췄다면 겉으로 드러날 수 있어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수양은 깊은데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은 거칠어 보인다. 하지만 내면은 잘 갖춰져 있지 않은데 겉만 번드르르한 사람은 스스로의 삶마저 기만하게 된다. 겉과 속이 잘 어우러져야 어른다운 어른이라 할 수 있다. 무엇으로 나를 다시 채울 것인가? 다산 정약용이 육십 년 공부의 정점에서 모든 성취를 내려놓고 선택한 생의 마지막 습관, '기본으로 돌아가는 것.' 그리고 어렸을 적 배웠던 『소학』을 다시 펼쳐 매일 새롭게 자신을 채우고자 했다. 다산은 이렇게 말한다. “궁리란 심오한 이치를 깊이 공부하며 만 가지 변화를 두루 섭렵하는 데 이르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날..

‘마음 챙김’이 필요한 당신에게

한때 네가 사랑했던 어떤 것들은/영원히 너의 것이 된다./네가 그것들을 떠나보낸다 해도/그것들은 원을 그리며/너에게 돌아온다./그것들은 너 자신의 일부가 된다. -앨런 긴즈버그 「어떤 것들」. 나는 언제나 궁금했다./세상 어느 곳으로도/날아갈 수 있으면서/새는 왜 항상/한곳에/머물러 있는 것일까./그러다가 문득/나 자신에게도/같은 질문을 던진다. -하룬 야히아 「새와 나」 『누가 시를 읽는가』에서 아이 웨이웨이가 말한다. “詩를 읽는 것은 현실 너머를 보는 것이다. 눈앞의 세계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찾는 것이며, 다른 삶과 다른 차원의 감정을 경험하는 것이다. 인간 본성을 이해하는 것이고, 가장 중요하게는 젊고 늙고 배우고 못 배우고를 떠나 타인과 나누는 것이다.” 詩는 삶의 모습과 우리 자신을 보여 준..

‘진짜 미칠 것 같을 때에는’

“우리는 ‘최고’가 되기 위해 비참해질 때까지 미친 듯이 자기 자신을 몰아붙여요. 하지만 우리 목표는 ‘진정한 자신’이 되는 거예요. 그러려면 뭔가를 맹신하던 습관을 버리고 새로이 눈을 떠야 해요. 지금 너무 괴롭고 아프다면 뭐가 잘못되었는지를 먼저 찾으세요. 지금의 고통은 훗날 10년 동안 웃으며 얘기할 수 있는 재미난 화제가 될 거예요. 결점 때문에 숨지 마세요. 결점은 불완전한 다른 사람들과 여러분을 연결해주는 끈이에요.” 《장래희망은 이기적인 년, ‘진짜 미칠 것 같을 때에는’ 중에서》 섭식 장애, 불안 장애, 우울증, 마약 중독, 알코올 중독, 사이비 종교 등 어린 나이부터 삶의 나락을 여러 차례 오가다 마침내 미국 전역 여성들의 멘토이자 ‘워너비’가 된 팟캐스터 캐런 킬거리프와 조지아 허드스타..

'당신 잘못이, 아니에요’

“어쩌면 우리는 누구나, 각자의 삶에서, 각자의 역량 껏, 이미 충분히, 열심히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 삶이 아무렇게나 돼도 상관없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아픈 게 좋은 사람, 힘든 게 좋은 사람이 정말 있긴 할까. 이미 최선을 다해 버티고 있는 서로에게 ‘노력’이라는 말을 꺼내는 것이 얼마나 가혹하고 무의미한 일인지, 이제는 나도 좀 알 것 같다. 안 그래도 아픈데 이게 다 네가 더 노력하지 않아서 아픈 거고, 안 그래도 힘든데 네가 더 노력하지 않아서 힘든 거라니. 노력. 그 말이 주는 무력감, 자괴감, 그리고 상처를 안다. 그래서 나는 희귀병 진단을 받고도 기뻤고, 그래서 나도 누군가에게 이 말을 전하고 싶어, 이 긴 글을 시작했는지도 모르겠다. 사는 게 참, 힘들죠? 하지만 당신 잘못이 아니에..

“갈 때의 오르막이 올 때는 내리막이다.”

“갈 때의 오르막이 올 때는 내리막이다. 모든 오르막과 모든 내리막은 땅 위의 길에서 정확하게 비긴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비기면서, 다 가고 나서 돌아보면 길은 결국 평탄하다.”(김훈의 「자전거 여행」, 프롤로그) 그의 언어는 그렇게, 언제나, 사실에 가깝게 가기위해 애쓴다. “꽃은 피었다”가 아니라, “꽃이 피었다”라고 고쳐 쓰는. 물리적 사실을 객관적으로 진술하려는 그의 언어는, 화려한 미사여구 없이 정확한 사실을 지시하고 있다. 그 때문에 오히려 한없이 아름답다. 엄격히 길에 대해서, 풍경에 대해서만 말하는 글 속에는, 어떤 이의 글보다 더욱 생생하게 우리 삶의 모습들이 녹아 있다. 그러기에 그의 문장 속 길과 풍경과 우리네 삶의 모습은 따로 떨어져 있지 않다. 그것들은 만났다가 갈라서고 다시 엉기..

눈에 보이지 않으면 안 믿는 세상

눈에 보이는 것은 믿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믿지 않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나아가 보이는 것만이 진리라고 웅변하는 시대에 우리는 산다. 과연 무엇을 보고 무엇을 믿어야 하는지의 기준은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 것일까? 박명우의 책 「사람, 삶을 안다는 것」은 보이는 모든 것은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인가에 근거하고 있다고 접근한다. "가장 중요한 내 자신을 잃어버리는 삶, 왜 사는가에 대한 물음에 대한 답을 찾아보는 시간이다.“ 저자는 책 속에서 보통 '나'는 자기 자신을 잘 안다고 생각하면서 익숙한 대상으로서의 자신을 탐구하려 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우리 자신을 저자가 제공하는 이해와 성찰을 통해서 관조할 때 '나'를 알아 가는데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고, 더 쉬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한걸..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여행은 세 번에 걸쳐 이루어진다. 여행을 계획하고 상상하면서 한 번, 실제로 여행을 해나가면서 또 한 번, 그리고 그 여행을 기억하고 기록함으로써 완성된다.” ​ 『오래 준비해온 대답』은 소설가 김영하가 10여년 전 시칠리아를 여행하며 보고 느낀 것을 생생히 담아낸 책이다. 이 책은 우리가 ‘세 번의 여행’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여행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언제든지 다시 시작될 수 있다는 것을 알려 준다. ​ 모든 여행은 ‘오래 준비해온 대답’처럼 시작된다. 여행 후 자신에게 일어난 변화를 모두 알고 난 후에 다시 추억하는 그 여행은 각별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다정하게 다가와 도와주고는 사라지는 따뜻한 사람들, 누구도 허둥대지 않는 느긋하고 여유로운 삶, 장엄한 유..

인간관계의 법칙, 유혹의 힘

수 세기 전만 해도 권력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폭력과 무자비한 힘이었다. 그러나 기지와 지략을 발휘해 불리한 조건을 극복하고 효과적으로 권력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인간관계에서 주도권, 즉 권력을 쉽게 차지하는 사람들이다. ​ 이러한 기술을 이미 본능적으로 가지고 있다. 어느 자리에서나 스스럼없이 이야기를 이끄는 사람, 직장 상사 앞에서도 지지 않고 자기주장을 관철하는 사람, 이성에게 유난히 인기가 많은 사람, 대중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 스타 정치인 등. ​ 일대일의 관계든 다수와의 관계든 반드시 무리 중 한 사람은 관계의 주도자가 된다. 다시 말해 모든 인간은 두 가지 유형, 즉 ‘관계를 이끄는 사람’이거나 ‘관계에 이끌려 다니는 사람’ 중 하나에 반드시 속한다는 것이다. ..

“힘들어도 괴롭진 않아”

“사직서라는 글씨를, 그것도 한자로 최대한 정성스럽게 써서 내니 기분은 최고였다. 지리산 노고단이 보이는 곳에서 드디어 내 맘대로 살 수 있게 된 거다!” ​ 기자 출신 원유헌(51)씨의 에세이집 ‘힘들어도 괴롭진 않아’는 ‘귀농 적응기’다. “다들 그렇게 산다지만 다들 그래야 하는 게 싫었다. 나는 후퇴를 꿈꿨다.” ​ 서울 토박이인 저자는 직장에 청춘을 바쳤다. 자본주의와 조직, 도시생활은 ‘더 이상 주는 대로 먹고 시키는 대로 살고 싶지 않다’는 각오를 다지게 만들었다. 마흔 넷에 가족과 함께 전남 구례로 갔고, 다시 청춘을 사는 중이다. ​ “맨 처음 정한 목표를 이루었다. 후퇴. 싫은 것과 거리 두기, 미운 사람 안 만나기, 나쁜 짓 안 하기, 돈 없으면 가만히 있기. 뒷걸음질만 한 건 아니다...

메뚜기와 꿀벌

옛날에 한 제사장이 "내 안에는 곰이 두 마리 있는데, 잔인하고 폭력적인 곰과 공감을 잘하고 남을 돌보는 곰"이라고 했다. 한 어린 소년이 물었다. "누가 이기게 될까요?" 제사장이 대답했다. "내가 먹을 것을 주면서 키우는 쪽이겠지.“ ​ 著者가 제시하는 이 우화는 '자본주의의 두 얼굴'이다. 책 제목인 '메뚜기와 꿀벌'(제프 멀건 지음)은 자본주의의 속성을 ‘메뚜기’와 ‘꿀벌’, 즉 ‘약탈자’와 ‘창조자’라는 대비되는 두 개념을 통해 설명한다. ​ 자본주의는 늘 약탈하고 갈취하는 '메뚜기'에게 보상을 해 왔고, 이는 자본주의가 지닌 부작용에 대한 신랄한 비판의 대상이 됐다. 著者는 이런 편견을 거부하고 균형 잡힌 시각으로 자본주의를 바라본다. ​ '꿀벌', 즉 '창조하는 자본주의'도 분명 존재한다. ..

‘늙음 오디세이아’

늙음을 바라보는 시각은 매우 다양하다. 각자의 인생 궤적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어쩌면 늙음을 보편적으로 정의하는 것, 심지어 정의하려는 의도 자체가 딱한 일일지도 모른다. ​ 유 형준교수(한림의대 명예교수, 현CM병원 내과)의 ‘늙음 오디세이아’는 이러한 난감함에 대한 정겨운 知的 여행을 선물하고 있다. ​ “늙음은 연구의 대상이라기보다 오히려 서술로 담아내어야 본디 모습이 제대로 드러나는 서사(敍事)의 소재라는 생각이다. 따라서 연구 논문이 아닌 오디세이아와 같은 서사시로 표현하는 게 늙음의 실체에 보다 가까이 다가서는 방식이라 여긴다.” (본문 「늙음의 시학」에서) ​ 몸은 늙어도 마음과 인격은 더욱 새로워진다. 더 원숙한 삶이 펼쳐지고 더 농익은 깨우침이 다가온다. 늙은 나이에도 젊은 마음이 있다...

“…마음의 주인이 되어라”

'일생 동안을 중노릇할 것은 아니다. 얼마간의 수도(修道)를 쌓은 뒤엔 다시 세상에 나아가 살 것이다. 그동안만은 죄인이다. 죽일 놈이다.'(1956년 3월) ​ 법정 스님(1932~2010)이 출가할 때 생각은 '도 닦고 돌아오는 것'이었다. 그러나 3년 후 편지에선 '금생(今生)뿐이 아니고 세세생생(世世生生) 수도승이 되어 생사해탈(生死解脫)의 무상도(無上道)를 이루리라'(1959년 3월)고 적었다. 그사이 서명도 '죽일 놈의 형'에서 '법정 합장'으로 바뀌었다. 스님 생전의 표현을 빌리자면 '풋중'에서 '중물'이 들어가는 과정이다. ​ 법정 스님이 출가하던 1955년부터 1970년까지 여덟 살 아래 사촌 동생 박성직(77)씨에게 보낸 편지글이 책으로 엮였다. '마음에 따르지 말고 마음의 주인이 되어..

‘어둠의 사회’와 ‘밀크맨’

지난해 영국의 맨부커 문학상을 받은 소설 '밀크맨'. 북아일랜드 출신의 작가 애나 번스가 "폭력과 불신, 피해망상이 만연하고 사람들은 가능한 한 최대로 스스로 알아서 생존해야 하는 곳에서 성장했다"고 회상하면서 쓴 소설이다. ​ 이 소설에서 화자 '나'는 열여덟 살 여성이다. '밀크맨'으로 불린 사내는 마흔한 살의 유부남. 그는 '우유배달부'를 뜻하는 호칭과는 무관한 삶의 소유자였다. ​ 그런데 '나'는 그 남자와 '그렇고 그런 사이'라는 소문에 휩싸였다. '나'의 형부를 비롯해 '어쩌면 남자 친구'로 불리는 연인마저 '나'를 비난했다. ​ 테러가 난무하는 폭력적 현실 속에서 '소문의 폭력'에 직면한 '나'의 곤경을 통해 정치와 성별(性別), 일상이 모두 폭력에 지배된 인간 사회의 어둠을 재현한다. 조지..

‘여행의 이유’와 삶의 旅情

여행의 목적은 일상으로부터 벗어난 휴식일 것이고, 새로운 경험과 배움일 것이다. 그러나 여행에는 늘 변수가 생겨나기 마련이고, 그것은 행로를 바꾸고 어떤 경우 삶의 방향까지 바꾸기도 한다. ​ 애초 품었던 여행의 목적이 여행 도중 발생하는 우연한 사건들로 미묘하게 수정되거나 예상치 못했던 무언가를 목적 대신 얻게 되는 경험, 작가 김 영하는 ‘여행의 이유’에서 인생의 여정과도 닮았기에 사람들은 아주 오랜 옛날부터 모험 소설과 여행기를 좋아해왔다고 말한다. ​ 작가의 글 ‘상처를 몽땅 흡수한 물건들로부터 달아나기’에서는 일상과 가족, 인간관계에서 오는 상처와 피로로부터 도망치듯 떠나는 여행에 관해 다룬다. ​ 집안 벽지의 오래된 얼룩처럼 마음의 상처는 쉽게 치유되거나 지워지지는 않지만, 여행은 불현듯 그에..

‘의학과 문학의 접경’

“문학이 의학 속으로 들어와 잡거(雜居, 잠시 머물다 감)하거나 혼거(混居, 한데 뒤섞여 삶)하면서 서로 공존한다. 공존은 통섭(統攝)이다. 이 상황을 재주(在住)라 칭하고자 한다. 섞여 녹아 원래의 하나가 되는 통섭이 아니다. 의학과 문학, 둘의 통섭은 불가능하고, 그 효용성도 의문이 크다고 생각한다.”-유 형준 교수(한림의대명예교수). ​ 유 교수는 “이러한 모든 신체와 정신의 문제와 변화 체험은 고스란히 문학의 소재와 주제다. 이 체험들을 문자 언어인 글로 표현하는 문학은 의학이 인간적으로 온전하도록 자극, 촉진하는 영향을 끼친다.”는 관점이다. ​ 인문학적 토양에 기초한 의학은 문학이 들어와 살기 좋은, 즉 질병학 속 문학의 재주(在住)에 어색하지 않은 거주 환경이 된다는 것이다. ​ 의학과 문학..

인간 본성의 법칙

기원전 5세기 아테네와 스파르타 사이에 발발한 펠로폰네소스 전쟁은 번영하던 아테네를 역사의 무대 밖으로 내쳤다. 아테네의 패배는 아테네인들이 인간 본성 중 하나인 비(非)이성의 먹이가 됐기 때문이다. ​ 「인간 본성의 법칙」의 저자 ‘로버트 그린’은 "이성은 인간의 본성이 아니다"라고 단언한다. 이성은 타고나는 게 아니라 연습을 통해 습득해야 하는 고상한 경지다. ​ 의사 결정 과정에 감정이 침투하면 자문(自問)부터 하는 습관을 들이라고 권한다. "나는 왜 분노하는가?"라고 묻지 않는 자는 스스로 생각하지 않고 남이 쳐 놓은 감정의 덫에 걸린다. ​ 무지와 자존심은 비이성의 좋은 먹이다. 감정에 휩쓸려서 내린 결정은 대개 자기 파괴적인 역풍을 초래하는데, 그 역풍은 차분하고 이성적으로 판단했으면 얼마든 ..

‘잠자는 이성’과 숨은 침묵

'광장엔 광장이 없었다/ 광장엔 거대한 침묵이 있었고/ 어둠이 있었다' ​ 광장의 함성에 숨은 침묵도 생각하고, 촛불의 광휘에 가린 어둠도 발견하는 마음이 시인의 '면벽 정신'이라는 것. 그래서 촛불의 공동체 못지않게 '여기서부터 다시 시작하자/ 촛불 하나 들고!'라며 촛불의 개별성을 예찬했다. ​ 선승(禪僧)의 면벽 수행이 해탈을 지향하는 것과는 달리, 시인의 면벽은 일상과 사회를 응시하는 정신의 태도를 뜻한다. 그는 촛불 시위에서 표출된 공동체 의식을 예찬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촛불의 광휘’에 가린 숨은 침묵을 얘기한다. ‘아픔보다 더 아픈 것'이라며 겸손을 통한 발견의 시학(詩學)을 제시한다. ​ 시를 우상화하지 않는다. 어떤 양극단에도 치우치지 않는 생각과 행동. 잠자는 이성을 생각게 한다..